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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사랑] 한자음(漢字音) 표기
글제목: [이덕일 사랑] 한자음(漢字音) 표기
[이덕일 사랑] 한자음(漢字音) 표기
처음 북경(北京)에 갔을 때 베이징이란 발음을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 베이(北)는 3성, 징(京)은 1성으로 발음해야 하는데, 억양 없이 발음했기 때문이다. 원음(原音)대로 표기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말해준다. 일본어는 한자를 발음으로 읽는 음독(音讀)과 뜻으로 읽는 훈독(訓讀)으로 나눈다. 교토(京都)의 유명한 금각사(金閣寺)는 긴카쿠지라는 음독으로 읽지만 같은 교토의 청수사(淸水寺)는 기요미즈데라라는 훈독으로 읽는다. 한자의 현지 발음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케 한다. 검법 이도류(二刀流)를 창안한 무사 화가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1584~1645)는 무사시 대신 다케조라고도 읽는다.


홍대용은 ‘연기(燕記)’에서 ‘내가 중국말을 거침없이 하니 그들(중국인)은 잘한다고 칭찬했다’고 적어 회화에도 능숙했다. 중국으로 오는 도중에 배웠다는 것인데, 반면 박지원은 간단한 인사말 외에는 회화를 전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중국인들과 대화할 때는 필담(筆談)을 곁들였다. 한자는 비단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은 차치하고라도 동아시아의 공용어였다. 말까지 하고 싶으면 홍대용처럼 발음체계를 따로 배워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표음(表音)문자인 한글 속에 표의(表意)문자인 한자를 녹여 내어 한 문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만큼 한글의 폭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중국인도, 일본인도 하지 못한 것으로 이질적인 요소를 융합하는 우리 민족 특유의 문화 수용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자를 현지 원음(原音)대로만 발음하자는 것은 표의 기능을 버리자는 것으로 두 다리로 걷던 사람에게 한 다리로 걸으라는 격이다. 한자를 표음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영어의 단점을 따라가자는 언어 사대주의에 입각한 역사와 전통의 파괴행위이다. ‘압록강 북부의 집안(輯安·고구려 국내성)’은 원음대로 적으면 ‘야루장 베이부 지안’으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한자 원음 표기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시급히 연구해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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